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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혐오예요 - 상처를 덜 주고받기 위해 해야 하는 말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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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혐오예요 - 상처를 덜 주고받기 위해 해야 하는 말

행성B(행성비)

홍재희

2017-04-30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b>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고

한국은 혐오 사회다. 혐오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계속 확장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향했던 혐오가 세월호 유가족 등 여느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 둔감하다. 혐오를 혐오라고 부르지 않으며 혐오가 생산되는 방식도 문제 삼지 않는다.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관대하고, 심지어 관대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정부 또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혐오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최근 들어 혐오하는 사람들의 적대적 발언과 행동이 급격하게 늘고 과격해지고 있다. 따라서 혐오를 혐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데서 혐오 끊기는 시작될 수 있다. 그래야 문제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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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들어간 혐오 입문서

《그건 혐오예요》는 혐오의 주 표적인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동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중심으로 어떤 말과 행동들이 혐오인지 집고, 혐오가 어떤 배경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그 뿌리와 메커니즘도 추적한다. 아울러 혐오를 끊을 방법도 모색한다.
저자 홍재희는 자신의 아버지 삶을 통해 아버지 세대 가부장을 성찰한 장편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을 만들었고 같은 제목으로 책도 낸 작가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이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가는 불안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사회적 약자다. 《그건 혐오예요》는 사회적 약자로서 저자 자신이 겪은 일들을 토대로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동물 문제에 오래 천착해 온 독립영화 감독 6인을 만나 쓴 책이다. 이 책은 혐오를 이론,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르포에 더 가깝다. 저자가 만난 감독 대부분은 감독이기 전에 각 현장에서 활발하게 발언하고 실천하는 활동가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감독들의 문제의식이 부딪쳐 혐오 문제에 관해 더 깊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그건 혐오예요》는 혐오에 관한 기존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책이다.
6명의 감독은 경순, 이길보라, 주현숙, 김경묵, 이영, 황윤이다. 경순 감독은 <쇼킹 패밀리> <레드 마리아 2> 등을 통해 꾸준히 여성과 가부장제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길보라는 청각장애인인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선보였다. 주현숙 감독은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비롯해 이주노동자에 관한 다큐를 찍어 왔고, ‘죽음을 부르는 군대를 거부한다’는 소견서로 유명한 김경묵은 양심적 병역거부 당사자로, 작년에 출소했다. 이영 감독은 성소수자 혐오 세력을 추적한 <불온한 당신>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고, 황윤은 동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영화도 전무했던 2001년부터 한결같이 ‘비인간 동물’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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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회적 약자지만
내일은 누가 될지 모른다

강남역 살인 사건, 발달장애인 시설 설립 반대 등은 혐오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일례다. 굳이 이런 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혐오 공격과 발언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혐오는 왜 생기고 어떻게 세력을 확장해 갈까. 그건 혐오의 타깃이 누구인지를 보면 극명해진다.

문제는 정치를 혐오하게 해서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데 있어요. 대중매체나 언론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기득권인 자기들끼리 뚝딱뚝딱 다 해 먹으려고 하는 거죠. 게다가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다른 이들,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거로 돌리게 하고요. 사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을 만들고 법을 바꾸고 현실정치를 바꿔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막으니까 다들 문제의 진원지가 아닌 곳에다 감정적으로 화를 푸는 거죠.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사회적 약자, 희생양에게 쏟아붓는 거지요. -주현숙 감독 <3장.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에서(111쪽)

지금까지 한국이 성장했던 방식은 다양성을 배제하는 방식이었어요. 내적 성장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경제 성장 우선으로 외형만 키워 왔기 때문에 이런 혐오가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지금 유독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고도성장 압축성장을 했던 한국 사회가 더는 성장할 동력이 없어서죠. 그래서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는 걸 지키기 위해 주변을 쳐내는 거예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군대에 갈 수 없다, 여성은 여성이니까 군대에 갈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배제하면서 또 그 배제를 차별의 이유로 삼는 거죠. 한마디로 비장애인?이성애자 남성 중심으로 그렇지 않은 나머지를 솎아 내 남김없이 쳐냄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지속해 왔다고 할까요. -이길보라 감독 <2장. 그건 장애인 혐오라고 조목조목 알려 줘야죠>에서(76쪽)

한국은 위협과 공포를 통해 유지되는 거죠. 불안감을 계속 조성해서 국민 개개인 목소리가 사라지길 바라는 거니까. 기득권이 힘을 가지려면 언제나 외부에 위협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는 최적의 교육소인 거죠. 한국에서 군대는 하나의 시스템이고 문화고 주류 제도죠. (…) 극우 보수 정권에게 군대가 얼마나 유용한 조직이에요? 징병제라는 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상명하복 문화, 전체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유용하잖아요. 학교에서 배운 걸 군대에서 정교하게 체계화하고, 그걸 사회생활에서 회사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고. 기득권 입장에서는 이 체제가 유지되는 게 좋겠죠. -김경묵 감독 <4장. ‘개인’을 지우는 군대를 거부합니다>에서(136, 137쪽)

사회가 불안해지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문제 원인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억눌린 분노와 불안을 해소할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은 혐오 대상이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었는데, 이제는 세월호 유가족 같은 여느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혐오의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공포와 적대를 이용한 증오의 정치가 등장하게 되면, 위험에 처하거나 손쉬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에요. 저 역시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염려스러웠고, 이 종북몰이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에게 향했던 혐오 공격은 세월호 유가족에게로, 평범한 시민들에게로 퍼져 갔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어느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혐오’라는 사회적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제 혐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영 감독 <5장. 처음은 성소수자겠지만, 마지막은 누가 될지 모른다>에서(156쪽)

그런데도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도리어 피해자라고 ‘코스프레’한다.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는 사회적 약자 때문에 다수의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를 역차별한다는 이 논리야말로 혐오 세력이 기획한 전형적인 프레임이라고 저자는 간파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차별당하는 ‘다수’는 없고, 차별받는 한 사람 한 사람, 파편화된 개인들이 모여 이룬 불특정 ‘다수’가 있을 뿐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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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파김치”
‘공감’을 가로막는 사회

저자는 우리가 혐오에 잠식되지 않고 혐오와 싸워 이길 유일한 방법은 “타자에 대한 공감”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이란 무엇일까.

연민은 내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이고, 공감은 그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연민은 강자인 내가 약자인 그를, 가진 자인 내가 못 가진 자인 그를, 위에 있는 내가 아래에 있는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반면 공감은 그의 처지에 서서 그가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그의 시선으로 나를,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동등한 시선으로 서로 마주 보는 것이다. -97쪽에서

공감할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더는 혐오할 수 없다. 공감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공감도 연습이다. 역시나 배워야 한다. 타인의 처지에 서서 그의 삶을 상상해 봐야 한다. 낯선 대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이런 상상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또한 저자는 혐오를 혐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혐오를 혐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혐오를 조장하고 자행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굳건히 뿌리내려야 하고, 혐오를 강력히 규제하는 사회적 제도와 문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경순 감독은 이 근원적인 문제는 정치로도 풀기 어렵고 “문화, 교육, 운동으로” 바꿔 낼 수밖에 없다고 피력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런 시각을 지니고 태어나진 않잖아요.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 남성일 경우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요. 한국 사회는 너무 바쁘고 경쟁적이고 숨 돌릴 수 없이 정신없는 사회예요. 우리는 뭐든 천천히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당장 먹고살기 급급해서 세상을 바꿀 조그마한 일에 참여할 여력도 에너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 다들 파김치가 되어 가는 거죠. 그런데 이제 더는 나눠 먹을 게 없어요. 나눠 먹을 땅도 자본도 없고.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거지요. 그럴 때 제일 먼저 쳐내는 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이죠. 사회적 약자가 가장 빨리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죠. 헬조선이라는 것도 그래서 시작된 건 아닐까요. -이길보라 감독(72쪽)

무엇보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려면 일단 두려움을 인정하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해요. 남자나 여자나 서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여유가 있어야 되는데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여유는커녕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 정도로 속도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거. 이런 사회인 게 더 큰 위기예요. 아무튼 이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따라 여성 혐오 문제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 과정은 정치로는 이루어 낼 수 없어요. 바로 문화로 교육으로 운동으로 바꿔 내야 해요. -경순 감독 <1장. 여성이 혐오하는 여성은 누구인가>에서(47쪽)

김경묵 감독은 최근의 페미니즘 붐에서 희망을 본다. 그건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뒤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경묵은 이 기회에 한국 남성들이 타자가 되어 보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저는 타자가 되는 경험은 결국 상처를 받아 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상처를 통해 자기라고 믿었던 견고한 틀에, 고정된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는 거죠. 그 균열을 통해 자기 밖으로 외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 세계를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창문을 하나 가지게 되고요. 상처에 함몰되면 자기 삶이 무너지겠지만 그 상처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세계가 밖에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저는 자신을 타자화해 보는 거, 타자가 되어 보는 경험이 정말 소중하다고 봐요.
그런데 특히 한국의 비장애인?이성애자 남성들 같은 경우는 본인 스스로 타자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건 이성애자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삼고 있는 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제도의 문제겠죠. 지금 한국은 과도기에 있다고 봐요. (…)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면서부터 한번도 자기를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남성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남성들조차 이제는 자신을 의심해 보기 시작했잖아요. 지금이 여성들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깨어나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요? -김경묵 감독(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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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건 혐오예요》에서는 사회적 약자 중 하나로 동물도 다룬다. 황윤 감독은 동물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이라고 표현한다.

저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더 공고히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계의 한 종일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인간이 마치 동물이 아닌 것으로 착각합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에는, ‘인간은 동물이 아닌 다른 존재’, ‘인간은 동물의 지배자, 관리자, 보호자’라는 생각이 함축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 대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다소 낯설고 길지만, 우리가 동물임을 잊지 않을 때 거기서부터 많은 지배?피지배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황윤 감독 <6장. 장 보듯이 동물을 사는 사회>에서(213쪽)

황윤은 본래 채식 위주였던 우리 식탁이 육류 중심으로 바뀐 배경을 추적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제6의 대멸종”은 순전히 인간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실 고기를 향한 한국인들의 욕망이 진짜 우리의 욕망일까요? 언제부터인가 거리엔 고깃집밖에 없고, 급식은 매일 고기반찬 위주이고, TV만 틀면 고기 먹방, 고기 광고뿐인데. 우리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요? 고기는 어쩌다 가끔 먹는 거였죠.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육식이 크게 비중을 차지한 건 최근 20~30년 사이의 일이에요. 1980년대에 정부가 주도해서 공장식 축산을 시작하면서, 소규모로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던 방식이 자취를 감추게 됐어요. 돼지를 대규모로 키워야만 정부 지원금이 나왔기 때문에 소규모 농장은 사라지게 됐어요. 농장은 공장이 됐고, 돼지는 가축이 아니라 축산동물, 산업동물로 전락했죠. -황윤 감독(206쪽)

현재 제6의 대멸종이 진행 중이에요. 지난 5번의 대멸종이 빙하기나 화산 등의 자연재해로 일어났었다면 현재의 멸종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하나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죠. 멸종이 이대로 계속되면 인간도 생존할 수 없게 돼요. 생태계는 아주 정교하게 짜인 그물망과 같아서, 고리 하나가 빠지면 연쇄적으로 다른 고리들이 빠지게 되죠. 그물망을 찢은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니, 그걸 다시 이어 붙이는 일도 인간 몫이죠. 윤리적 책임뿐 아니라,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황윤 감독(212쪽)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처럼, 인간 사회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도록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것이 혐오를 끊어 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혐오야말로 ‘우리’라는 관계망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해악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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